[사진=AI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국산 36호 당뇨병 신약인 대웅제약의 '엔블로(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가 심장 질환 영역으로 영토 확장을 시도한다. 단순한 심혈관 부가 혜택을 넘어, 마땅한 내과적 치료제가 없는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라는 난치성 질환의 근본적 치료제로 거듭나려는 행보가 포착돼 주목된다.
15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엔블로의 주성분인 이나보글리플로진을 유효성분으로 포함하는 석회화성 판막 질환 치료용 약학 조성물을 도출해 내고 이에 대한 독점권 확보를 위해 특허 등록 절차를 진행 중이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석회화성 대동맥판막 질환의 일종이다. 노화로 인해 심장의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의 판막이 돌처럼 굳어지는 퇴행성 질환으로, 관상동맥질환과 고혈압에 이어 3대 심혈관 질환 중 하나로 꼽힌다.
판막이 굳어지는 초기 단계인 대동맥판막 경화증을 지나 증상이 더 악화하면 판막이 좁아지는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무증상에 가깝지만, 병이 진행돼 환자가 가슴 통증이나 호흡곤란, 실신 등의 이상 증상을 자각한 이후에는 2~5년 내 사망할 확률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예후가 불량하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국내 대동맥판막 협착증 진단 환자 수는 2010년 4600여 명에서 2022년 2만 1000여 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으며, 글로벌 치료 시장 규모 역시 2035년경 약 25조 원(18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판막의 석회화 진행을 늦추거나 역전시키는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아 약물 치료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가슴을 열어 병든 판막을 인공 판막으로 교체하는 외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SAVR)이나 허벅지 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하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TAVR) 등 몇 안 되는 치료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수술비와 초고령 환자가 감당해야 할 침습적 시술의 위험성, 인공 판막의 수명 제한 등이 한계로 지적된다.
대웅제약은 이러한 미충족 수요를 겨냥, 자사의 당뇨병 치료 신약인 엔블로의 주성분인 이나보글리플로진이 석회화를 일으키는 단백질 발현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이를 이용해 칼슘 침착으로 인한 판막 석회화를 줄이는 조성물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뼈처럼 굳는 심장 판막 … '엔블로', 석회화 조골세포 전환 원천 차단
심장 판막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판막 사이질 세포(VICs)는 만성 염증이나 기계적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칼슘을 축적하고 뼈조직과 유사한 성질을 띠는 '조골세포 유사 세포'로 변한다. 대웅제약은 인간 판막 사이질 세포를 이용한 체외(In vitro) 실험을 통해 이나보글리플로진이 이러한 조골세포 전환 과정을 직접 차단한다는 것을 최초로 확인했다.
대웅제약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판막 석회화를 유도한 인간 판막 사이질 세포에 이나보글리플로진 1µM을 투여하자, 칼슘 결절 형성을 평가하는 알리자린 레드 S(Alizarin Red S) 염색 면적이 빠르게 감소했다. 염색된 칼슘 침전물을 정량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나보글리플로진 투여군은 석회화 유도군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치 감소가 확인됐다.
유전자 및 단백질 수준의 미시 분석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됐다.
판막 석회화가 진행되면 골 형성의 마스터 스위치인 RUNX2와 뼈 성장을 유도하는 단백질인 BMP2의 발현량이 mRNA 수준에서 정상 대조군 대비 각각 약 15배, 8배가량 증가한다.
그러나 이나보글리플로진 치료군에서는 이들 두 가지 핵심 바이오마커의 발현이 유전자 전사 단계부터 단백질 번역 단계까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p<0.001)으로 강력하게 차단됐다.
TAVR 시술 환자 대상 연구자 임상도 … 심부전 예방 넘어 인공 판막 수명 연장 정조준
대웅제약의 이러한 적응증 확대 시도는 앞서 지난 2024년 말 시작된 연구자 임상시험을 통해 엔블로의 대동맥판막 협착증 치료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18개 상급종합병원이 참여하고, 대웅제약이 지원군으로 나선 해당 연구자 임상시험은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TAVR 시술을 받은 환자 중 심부전을 동반한 성인을 타깃으로 한다. 104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오는 2027년 12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SGLT-2 억제제 특유의 심부전 억제 효과를 통해 시술 후 잔여 심혈관 위험을 낮추고, 추가적인 심혈관계 이상 반응을 예방하는 이중 혜택을 인체 내에서 입증하는 것이 임상시험의 목표다. 특히 회사 측이 이나보글리플로진의 RUNX2 및 BMP2 차단 기전을 확인한 만큼, 인공 생체 판막 자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퇴행성 석회화를 지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RWD로 입증된 SGLT-2 억제제 잠재력 … 25조 미개척 시장 향한 '퀀텀점프'
대웅제약의 이 같은 엔블로 적응증 확대 행보는 글로벌 시장의 거대한 패러다임 흐름과도 일치한다. 미국심장학회 중재시술 저널(JACC Cardiovasc Interv) 등에 발표된 후향적 대규모 코호트 데이터에 따르면, SGLT-2 억제제 복용군의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 진행 비율은 4.6%로, 비복용군 10.9%의 절반 이하에 불과했다. 다양한 혼란 변수를 조정한 이후에도 SGLT-2 억제제 복용군의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 진행 위험은 비복용군 대비 39% 감소했다.
특히 투여 기간이 길어질수록 혜택이 증폭되는 기간 의존적 효과가 관찰됐는데, 복용 기간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면 위험 감소 효과가 무려 73%까지 상승하는 결과가 도출됐다.
약 22만 8000명의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 데이터를 분석한 대규모 TriNetX 플랫폼 연구에서도 SGLT-2 억제제 복용군은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HR 0.595), 심정지(HR 0.71), TAVR 시술 필요성(HR 0.835), 외과적 판막 치환술(SAVR) 필요성(HR 0.514)을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글로벌 연구 동향에 비춰볼 때,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엔블로의 선제적 연구자 임상시험과 해당 질환 적응증을 겨냥한 이번 엔블로 특허 출원은 아직 치료제가 등장하지 않은 대동맥판막 협착증 치료제라는 미개척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대웅제약의 퀀텀점프 전략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빅파마조차 아직 근본적 해답을 내놓지 못한 25조 원 규모의 미충족 시장에서, 국산 36호 신약 엔블로가 한계에 부딪힌 기존 치료 패러다임을 뒤집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