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의 중심축이 '정맥주사(IV)'에서 '피하주사(SC)'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과거 SC 제형은 그저 투약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보조적 수단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수십조 원 규모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호하는 강력한 '특허 방어의 보루'이자, 기술 하나만으로 조 단위 로열티를 창출하는 '원천 기술의 꽃'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왜 이 작은 바늘의 변화에 수조 원의 자본을 쏟아붓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특허 전쟁과 기술 혁신의 실체는 무엇인지 분석했다. 본 기획 시리즈는 글로벌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SC 제형 전환의 전략적 가치(上)부터, 천문학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익 모델(中), 그리고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총성 없는 특허 전쟁과 차세대 기술의 등장(下)까지 총 3회에 걸쳐 현재와 미래의 의약품 시장을 조명했다. <편집자 주>
[上] 글로벌 빅파마들은 왜 피하주사 제형에 열광하는가?
[中] 연 로열티만 1조 원 … '약물 전달 기술' 하나로 블록버스터급 수익 창출
[下] 로열티가 부른 '특허 전쟁'… 할로자임의 성벽을 허무는 도전들
피하주사 제형이 세계 의약품 산업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글로벌 빅파마들의 시선이 피하주사(SC) 제형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특히 SC 제형에 대한 대형 기술 거래와 파트너십 소식이 잇따르면서 주사제를 개발하는 기업들의 관심은 온통 이 제형에 꽂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빅파마들은 왜 SC 제형에 열광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투약시간 단축을 통한 편의성 개선 이상의 전략적 의도가 숨어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의약품의 특허권 방어가 그것이다.
SC 제형은 약물 투약 시간을 단축해 환자의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그간 글로벌 의약품 시장을 호령해 온 항암제 및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들은 혈관에 직접 투여하는 정맥주사(IV)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해당 약물들의 타깃 질환 특성상 치료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혈중 농도의 신속한 도달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조직 침투 과정을 거치며 흡수 속도가 지연되는 SC 제형에 비해 유효 성분을 혈류로 즉각 전달해 생체이용률을 극대화하는 IV 투여 방식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 바로 히알루로니다아제의 활용이다. 히알루로니다아제는 피하 조직 내에 존재하는 히알루론산을 분해하여 피부 조직 내의 약물 전달 통로를 일시적으로 확장하는 효소다.
히알루로니다아제를 활용해 SC 제형의 약물 흡수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토대는 이미 20년 전에 마련되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2005년 미국 할로자임(Halozyme)의 '하일레넥스(Hylenex)'를 허가하면서다.
이처럼 상용화의 물꼬가 터진 지 무려 2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최근들어 SC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유는 다름아니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바이오시밀러의 파상공세와 전 세계 보건 당국의 정책 기조 변화가 그 배경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에 맞춰 바이오시밀러들이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고, 각국 정부가 공공의료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바이오시밀러 처방을 적극 장려하고 나서면서다.
무엇보다 바이오시밀러의 부상은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조적으로 와해시키는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바이오시밀러 개발 비용은 3억 달러(한화 약 4300억 원)로, 오리지널 의약품 개발 비용인 30억 달러(한화 약 4조 3000억 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산술적으로 약가를 오리지널 대비 11% 수준만 유지해도 바이오시밀러 기업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결국 바이오시밀러의 저가 공세와 이에 따른 약가 인하 압력이 오리지널 기업들을 SC 제형 개발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길로 내몬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 업체가 IV 복제에 성공하더라도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SC 전환까지 단행하기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SC 전환은 오리지널 업체가 후발 주자들을 따돌리고 시장 주도권을 지켜내기 위한 필승의 방어 전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