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모레노 감독. /사진=알베르토 모레노 감독 SNS
[Asports뉴스] 이진경 기자 = 로베르토 모레노(48·스페인)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보장된 경기는 6경기다. 에콰도르전을 시작으로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우즈베키스탄과 국내 4연전을 치른 뒤 11월 A매치 두 경기를 소화한다. 계약 만료일은 11월 27일이다.
선임일인 9월 1일부터 계산하면 계약 기간은 약 3개월이다. 실전은 9월 24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경기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시간은 사실상 두 달 남짓이다.
대한축구협회(KFA)는 6경기 평가 뒤 202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을 계약서에 넣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은 내년 1월 개막한다. 임시 사령탑 타이틀을 달았지만 6경기가 사실상의 장기 계약 오디션인 셈이다.
◇공개채용 1호…감독 선임 방식부터 달라졌다
모레노 선임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절차다. 협회가 남자 A대표팀 감독을 공개채용 방식으로 뽑은 사례는 처음이다. 지난 2월 개정된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운영 규정은 대표팀 감독 공개채용을 원칙으로 규정했다.
협회는 7월 말 이사회에서 임시 감독 공개채용을 결정한 뒤 전력강화위원 일부와 외부 평가위원을 묶어 평가위원회를 구성했다. 서류 심사, 온라인 면접, 대면 미팅, 계약 협상 순서를 거쳤다. 최종 후보군에는 모레노 외에도 도메네크 토렌트, 헤수스 카사스, 에르빈 쿠만 등이 포함됐다.
선임 과정이 과거 대표팀 감독 인사 때마다 불거졌던 절차 논쟁을 의식한 결과라는 점도 읽힌다.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은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에 대한 관심을 언급하면서 대한체육회 기준 준수를 강조했다. 모레노에게는 한국 축구 이해도, 전술 대안, 데이터 활용 능력, 상대 분석 등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공개채용이 감독 선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절차였다면 9월부터는 다른 평가가 시작된다. 대표팀 감독은 결국 경기력과 결과로 평가받는다.
◇프로선수 경력 없는 감독…출발점은 ‘분석’
모레노의 경력은 일반적인 스타 선수 출신 감독과 상당히 다르다. 1977년 9월 19일생인 모레노는 현재 만 48세다. 프로선수 경력이 없고 어린 나이에 지도 공부를 시작했다. 모레노는 “나는 프로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두 배로 공부한다”고 자신의 지도자 경력을 설명한다.
프로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출발점도 비디오 분석이었다.
FC바르셀로나 B에서 비디오 분석 업무를 담당했고 AS 로마, 셀타 비고를 거치며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참모로 성장했다. 2014년 엔리케가 바르셀로나 1군 감독에 부임하면서 모레노도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2014~2015시즌 바르셀로나는 라리가, 코파 델 레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제패해 트레블을 달성했다. 모레노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엔리케 사단에서 일하며 라리가 2회, 코파 델 레이 3회, 챔피언스리그 1회 등 주요 우승을 경험했다.
한국이 모레노에게 기대하는 강점도 경력의 출발점과 닿아 있다. 협회는 데이터 활용, 전술 설계, 상대 분석 능력을 선임 배경으로 제시했다.
로베르토 모레노 감독. /사진=KFA
◇국가대표 감독 기록은 ‘9경기 무패’
모레노는 2018년 엔리케 감독을 보좌하며 스페인 대표팀에 합류했다. 2019년 엔리케가 가족 문제로 자리를 비우자 임시 감독을 맡았고 이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스페인 지휘 당시 공식 기록은 9경기 7승2무다. 패배가 없었다. 유로 2020 본선 진출도 확정했다. 한국에서 참고할 지점은 성적보다 환경이다.
대표팀은 클럽과 달리 훈련 기간이 짧다. 선수를 매일 지도할 수 없고 상대마다 제한된 훈련 횟수 안에서 전술을 전달해야 한다. 경기 분석과 상대 맞춤 준비에 강점을 보인 모레노의 경력이 국가대표 운영 방식에는 적합할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에서 임시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던 경험도 한국 계약 구조와 묘하게 닮았다. 6경기에서 평가를 받아 아시안컵까지 계약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모레노는 두 번째 ‘임시→장기’ 도전에 나선다.
◇모나코 13경기, 그라나다 27경기…클럽에서는 달랐다
대표팀에서 기록한 7승2무만 보면 위험 요소를 찾기 어렵다. 클럽 감독 경력을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스페인 대표팀을 떠난 뒤 맡은 AS 모나코에서는 13경기를 지휘했다. 5승3무5패를 기록했고 시즌 종료 후 구단과 결별했다.
그라나다에서는 2021~2022시즌 라리가 27경기에서 5승10무12패를 기록했다. 마지막 7경기에서 6패를 당했고 발렌시아전 패배 직후 경질됐다. 당시 그라나다는 강등권과 가까운 17위였다.
러시아 소치에서도 극단적인 성적 변화가 있었다.
모레노는 소치의 2부 강등 후 2024~2025시즌 1부 승격을 이끌었다. 승격 자체는 분명한 성과였다. 2025~2026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복귀 후 상황이 급변했다.
소치는 개막 7경기에서 승리 없이 1무6패, 승점 1에 그쳤다. 구단은 지난해 9월 모레노와 결별했다.
국가대표 단기 운영과 클럽 장기 운영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협회가 6경기짜리 임시 계약을 선택한 구조는 모레노의 강점을 활용하면서 장기 운영 능력까지 확인할 수 있는 형태다.
알베르토 모레노 감독. /사진=알베르토 모레노 감독 SNS
◇첫 소집부터 13일간 4경기…시간이 가장 부족하다
모레노가 가장 빠르게 풀어야 할 문제는 전술 철학보다 시간이다. 대표팀은 오는 24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에콰도르와 모레노 체제 첫 경기를 치른다.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우루과이를 만난다.
내달 2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베네수엘라, 6일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을 상대한다. 네 경기 모두 오후 8시에 시작한다. 9월 24일부터 10월 6일까지 13일 사이 네 경기를 치르는 일정이다. 경기 간 간격은 모두 나흘이다.
FIFA가 2026년부터 기존 9월·10월 A매치 기간을 16일짜리 기간으로 통합하면서 가능한 편성이다. 선수 회복, 선발 구성, 전술 변화, 부상 관리까지 한 번의 소집에서 처리해야 한다.
새 감독에게는 상당히 특수한 조건이다.
첫 경기용 베스트11만 찾는 방식으로 네 경기를 운영하기 어렵다. 손흥민, 이강인 등 기존 핵심 선수 활용법과 월드컵 이후 세대 개편, K리거와 해외파 조합, 포지션별 대안까지 동시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모레노가 평가받아온 분석 능력이 가장 빨리 드러날 구간도 4연전이다. 상대 네 팀의 스타일이 서로 다른 만큼 경기마다 얼마나 빠르게 대응책을 제시하는지가 중요한 관찰 지점이다.
◇스페인 코칭스태프 5명…빠른 전술 이식 노린 구성
참모진도 모레노 색채가 강하다. 에두아르도 도캄포 수석코치는 소치에서 모레노를 보좌했다. 하신트 마그리냐 코치는 분석과 훈련 방법론, 빅토르 브라보 데 소토 코치는 스페인 하부리그 지도 경력을 보유했다.
하비에르 초카로 피지컬 코치와 니코 보쉬 골키퍼 코치까지 포함하면 모레노를 제외한 코칭스태프 5명 전원이 스페인 출신이다.
장점은 의사결정 속도다. 감독의 훈련 방식과 용어, 경기 준비법을 이해하는 참모진을 데려오면 짧은 소집에서도 업무를 빠르게 나눌 수 있다.
숙제도 있다. K리그 선수 정보, 한국 선수들의 성향, 대표팀 내부 문화, 장거리 이동을 반복하는 해외파의 컨디션 등을 얼마나 빨리 파악하느냐가 중요하다.
6경기뿐인 임시 체제에서는 적응 기간 자체가 평가 기간이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모레노 감독. /사진=알베르토 모레노 감독 SNS
◇6경기 평가표…승수만 보면 부족하다
대표팀 상황을 감안하면 확인할 분야는 비교적 분명하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뒤 떨어진 경기력을 얼마나 회복하는지, 기존 핵심 자원과 새 얼굴을 어떻게 조합하는지, 상대별 전술 변화가 작동하는지, 네 경기 연속 일정에서 선수 체력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에콰도르와 우루과이를 상대로 경쟁력을 보이고, 아시아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우위를 증명한다면 아시안컵 연장 논의에 힘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내용과 성적이 모두 부진할 경우 협회가 11월 뒤 새 감독 선임에 나설 명분이 커진다.
모레노의 계약 구조는 안전장치와 기회를 모두 담고 있다. 협회는 장기 계약 부담을 지지 않고 감독을 검증할 수 있고, 모레노는 6경기로 아시안컵 지휘권을 얻을 기회를 잡았다.
스페인 대표팀에서 9경기 무패를 기록했던 단기전 능력이 재현될지, 모나코·그라나다·소치에서 드러난 불안정한 클럽 경력이 다시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답을 얻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9월 24일 수원에서 첫 평가가 시작된다. 11월 27일 계약 종료 시점에는 ‘임시 감독 로베르토 모레노’가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에 오를 사람인지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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