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복지신문=정혜윤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25대와 제26대 총무원장과 팔공총림 동화사 제2대 방장을 역임하며, 한국불교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살아낸 임담 의현 대종사의 구순(九旬)을 기리는 법회가 경북 상주시 속리산 자락 성불사에서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 속에 봉행됐다.
화려한 형식보다 수행자의 본령을 드러내듯, 이날 법회는 각 종단 대덕 스님들과 사부대중 10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발원으로 채워졌다.
구순. 한 수행자의 생을 숫자로만 헤아리기엔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의현 대종사의 지난 삶은 한국불교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며, 그 자체로 한 편의 수행 서사라 할 만하다.
의현 대종사는 1952년, 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시기 가야산 해인사에서 상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가 처음 불문에 들던 그 시절, 나라는 폐허 위에 있었고 불교 또한 시련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그는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고, 이후 평생을 불법과 중생을 위해 헌신해왔다.
특히 널리 회자되는 일화는 6·25 전쟁 당시 해인사 장경각을 지켜낸 사건이다. 북한군 주둔으로 미군 폭격 위험에 놓였던 순간, 어린 행자였던 그는 밀가루 포대를 이어 만든 태극기를 지붕 위에 펼쳐 보이며 “이곳은 사람이 있는 사찰”임을 알렸다.
그 한 장의 태극기가 결국 팔만대장경을 지켜냈다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불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준다. 수행이란 좌선과 독경에만 머무르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실천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다른 일화 역시 그의 이타행을 잘 드러낸다. 1973년, 동화사에 봉안되어 있던 사명대사 진영이 도난당했을 때 그는 며칠 밤낮을 수소문 끝에 김포공항까지 쫓아갔다. 그리고 밀반입자 앞에 엎드려 절하며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고서야 유물을 되찾았다. 수행자의 체면이나 위의가 아니라, 불법과 전통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신념이 만들어낸 결단이었다.
이러한 삶의 궤적은 자연스레 종단의 중책으로 이어졌다. 그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대와 제26대 총무원장을 역임하며 종단의 안정과 발전을 이끌었고, 이후 팔공총림 동화사 제2대 방장으로 추대되어 사부대중의 정신적 귀의처 역할을 수행했다. 방장은 단순한 직위가 아니라 수행과 덕망으로 공동체를 이끄는 상징적 존재다. 선·교·율·염불을 두루 갖춘 총림에서 방장이 지니는 의미는 곧 불법의 등불과도 같다.
최근에도 그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경북 초대형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1억 원의 성금을 쾌척하며 자비행을 실천했고, 팔공산 국립공원 지정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수행자의 삶이 시대와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번 구순 법회가 동화사가 아닌 상주 성불사에서 봉행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방장으로서 상징성을 지닌 공간에서 사부대중이 보다 폭넓게 함께했다면, 그 의미는 더욱 크게 확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소의 아쉬움이 법회의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오히려 소박한 도량에서 울려 퍼진 축원의 염불은 수행자의 삶이 지향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한다.
이날 법회에 동참한 대중은 단순히 한 원로 스님의 장수를 축하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불법을 지키고, 중생을 위해 몸을 낮추며, 실천으로 신행을 증명해 온 한 수행자의 삶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구순을 맞은 의현 대종사의 삶은 이제 ‘오래 사는 것’의 의미를 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의 일대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위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불법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으며, 중생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오늘을 사는 불자들에게 그의 삶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수행은 시대와 동떨어진 고립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중생과 함께 호흡하는 것임을. 그리고 진정한 공덕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는 목탁스님, 진각스님, 전남정 스님, 대우스님, 일붕문도 중앙회장 안성 영평사 주지 해가 정림스님, 일붕신문사 대표 이붕 서병열 회장 등이 참석해 한 수행자의 삶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 됐다.
성불사에 울려 퍼진 이날의 염불은 단지 한 분의 장수를 기원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이 시대 불자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되묻는 수행의 메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