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대한민국 의료의 최전선을 지탱해 온 전공의들이 마침내 병원 자본과 마주 앉았다. 지난 5월 8일, 전공의노조가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과 가진 사상 첫 정식 단체교섭 상견례는 그 자체로 한국 의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사건이다. 노조 출범 이후 개별 병원과의 단발성 협의는 있었으나, 법적 구속력을 갖는 정식 교섭의 문턱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전공의노조가 전달한 '백병원 전공의 근로실태조사 보고서'와 요구안은 우리 의료계가 그동안 외면해 온 민낯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반직 수준의 임금 보장, 근로 및 휴게시간 엄수, 대체인력 충원을 통한 수련 환경 개선 등은 사실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피교육자'라는 특수한 지위에 묶여 주 80시간이 넘는 초과 근로와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를 견뎌야 했던 전공의들에게 이는 수십 년간 묵혀온 과제이자 피 맺힌 절규와 같다.
우리가 주목하는 대목은 이번 교섭이 단순히 처우 개선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노조는 강령을 통해 전공의가 의료 최일선에 있음을 자각하고 국민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청준 위원장이 이날 상견례에서 기존 진정 등을 취하하며 신뢰 회복을 먼저 제안한 것은 노조의 목적이 파괴가 아닌 '상생을 위한 환경 정상화'에 있음을 보여준다. 백중앙의료원 서진수 의료원장 역시 과거 전공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화에 임했다고 하니, 일단 출발은 고무적이다.
현재 전공의노조는 백병원 외에 한림대학교의료원, 중앙대학교의료원과도 교섭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백중앙의료원과의 교섭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다음 단추가 꼬이지 않는 법이다. 전공의노조가 내건 '노동시간 단축', '법정 휴게시간 보장', '임신·출산 전공의 안전 보장' 등의 목표는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그간 우리 의료계가 당연시해 온 '희생의 상시화'가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를 반증하는 지표들이다.
전공의의 열악한 노동은 곧 환자의 안전 위협으로 직결된다. 수면 부족과 과로에 시달리는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노조가 강령에서 밝혔듯, 수련병원의 기본 경영 원칙은 '진료'와 '연구' 그리고 '합리적인 수련'의 균형에 있어야 한다. 병원 측은 이번 교섭을 단순히 비용 지출이나 경영상의 장애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정부 또한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전공의 수련 비용에 대한 국가 책임제를 실현하고, 대체인력 확보를 위한 예산 지원 등 실질적인 정책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젊은 의사들의 헌신 위에 'K-의료'의 금자탑을 쌓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첫 단체교섭이 수십 년간 지속된 비정상적인 노동 관행을 종식하고, 의사가 인간다운 환경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료 선진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병원 경영진과 노조 양측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태도로 합리적 접점을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엄중히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