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기로 했다
그냥 살기로 했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4.05.0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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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꽃이 지고 있다. 하르르, 꽃잎이 떨어진다. 화려한 한 생을 보낸 답례의 분분한 낙화. 봄이 화락화락 떠나고 있다. 온 천지를 에운 꽃에 나도 꽃이 되는 꿈을 꾼다. 흘러간 시간의 미운 후회가 꽃으로 곱게 피어난다. 봄이면 감히 꽃이 되고 싶다. 이 나이에도 찬란한 봄이 되고 싶다.

3월이 되면서 그이가 치과 치료를 받기로 했다. 충치로 고생하면서도 약으로 때우며 통증을 달랜 시간이 꽤 길었다. 치과에 가기를 좋아하는 이는 없다. 누구나 꺼리는 건 마찬가지다. 그이는 유독 치과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랜 설득 끝에 힘들여 결정한 것이다. 치아 전체를 손을 보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대공사다. 나는 몇 해 전에 싹 치료를 받았고 스케일링도 작년에 한 상태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여 온 김에 스케일링을 받을 요량이었다. 치아 CT를 찍어본 결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 문제가 생겼는가 보았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같이 치료받기로 한다. 보름에 걸쳐 치료가 끝나고 스케일링도 마쳤다. 아직 그이는 한참 치료를 남겨두고 있다. 스케일링은 아주 중요하다. 치석이 치매를 유발하기도 하고 뇌졸중과 심장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잇몸에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주범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치아는 오복 중에 하나다. 건강한 이와 고른 치열을 말함이다. 나는 둘 다 엉망이다. 어려서부터 치통을 달고 살았다. 어른이 되어서야 긴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았고 앞니가 토끼 이빨처럼 못생겼다. 윗니의 중앙에 있는 두 개가 다른 치아에 비해 크고 약간 돌출되어 있어 밉다. 그래서 앞니를 드러내고 활짝 웃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늘 신경이 쓰인다. 내내 속앓이 중인 앞니를 상담을 받아본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저문 즈음에 뚱딴지 생각일 수도 있다. 커다란 앞니의 양쪽으로 사이가 벌어진 게 요즘 들어 더 보기가 싫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은 여자에게 있어 무죄다. 풋풋한 나이거나 익은 나이거나 똑같은 여자다. 라미네이트라는 간단한 방법이 있음을 알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튀어져 나온 부분을 깎아내고 기공물을 붙이는 시술로 짧은 시간에 된다는 희망이 스스로 부추겼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라미네이트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교정을 권한다. 치료 기간도 6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이를 어쩌랴. 두 가지 마음이 나를 흔든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굳이 교정까지 할 필요성이 있냐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까지 콤플렉스로 가지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렇게 엇갈리고 있을 때 그이가 말한다. “이 해봐” 그 소리에 시키는 대로 “이” 한다. “귀엽기만 하구만” 제 눈에 안경인가 보다. 상담하던 간호사가 그이의 말에 실소(失笑)를 터트린다. 팔불출이 따로 없다. 민망하여 다음에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치과를 나왔다.

그이의 한 마디에 돈이 굳었으니 가세에 도움이 되었다. 이 효과를 노린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나까지 일이 벌어져 정신없는 상황이 싫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귀엽다는 그이의 말에 감동해서도 아니고 수긍해서도 아니다. 내 안에서 갈등이 끝났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보기 싫지 않으면 이는 굳이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생긴 모습 그대로, 그냥 이대로 살기로 했다.

꽃노을 진 거리에 벚꽃잎이 날린다. 지는 모습도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 시들어 다 마른 채로 꼬투리가 되어 다음 해 잎이 나올 때까지 통째로 남는 꽃. 유럽수국은 볼수록 추하다. 나의 마지막 모습은 질 때를 알아 꽃잎으로 날리는, 그 모습도 고운 벚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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